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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수를 놓으며(1)
기다림의 끝을 알고 싶을 때
가만히 수를 놓는다
바늘에 색색 고운 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다
수틀 위로 실오라기
한 올 지나갔을 뿐인데
새가 날고 나무가 자란다
바늘 끝이 닿을 때마다
기다림의 마법은 풀리고
새로운 세상이 깨어난다
가끔은 한 가닥 실이 가는 길인데도
엉키고 꼬이고 헤매기도 하지만
필요한 것은 성급한 가위질이 아니네
매듭을 풀어 주는 것
기다림과 인내인 것을 알고 싶을 때
가만히 수를 놓는다
삶의 고운 인연들을
시간의 바늘에 꿰어
아름다운 꽃 수를 놓고 싶다
오해의 실
미움의 실
엉켜있는 실뭉치 같은 삶의 숲을 헤쳐
사랑과 평안의 향기로운 수를 놓고 싶다
한 땀 한 땀 놓아가는 인생의 수틀
한 가닥 실처럼 외길을 가도
원치 않는 매듭 앞에
삶을 동강 내는 가위질을
이젠 그만 하고 싶다
한 올 한 올
침묵과 인내로 인생의 가는 실을 풀어가고 싶다.
기다림의 끝을 알고 싶을 때
가만히 수를 놓는다
김호순 시 l 그리움은 멈춤이 없습니다
l 내 안에 땅끝이 있다
십자수를 놓으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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