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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김호순_그리움은 멈춤이 없습니다

밤을 깎으며

by buyoham 202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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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깎으며

 

잠든 아버지를 지키는 밤나무 몇 그루

살아생전 받지 못한 효

차가운 땅에 누우신 채로

밤나무 향기에 쓸쓸한 마음을 달래신다

 

그리움이 익어 툭탁 떨어지는 알밤

평소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계명인 양

도토리만 한 것까지도 귀하다

 

깊어가는 밤

밤을 깎는다

무디어진 칼날을 던지고

톱날처럼 날카로운 밤나무 가위로

고집처럼 굳어있는

반달머리를 밀어내고 솜털 보송한

잔머리마저 벗겨 내면

희고 뽀얀 속살을 수줍은 듯 보인다.

 

겉보기엔 둥글고 커 보여도

속엔 포동포동 밤벌레가 집을 짓고

 

빛 좋은 개살구 마냥

실속 없는 내 인생이 보인다

 

겉보기엔 쭈글쭈글 볼품없는 한숨뿐이어도

그럴수록 속살은 더 달콤하고 연하고

구차한 듯 정갈한

아버지 인생이 보인다

 

아버지가 밤나무 밑을 그토록

오르내린 것은

가시 많은 밤투성이처럼

삶의 길목 길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인생의 가시를 제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밤 껍질처럼 굳어진 삶의 체면과 무능을

벗고 싶었으리라

 

가시 많은 인생의 숲이 지나가면

속살 눈부신 알밤처럼

새로운 삶의 절정을 느껴보고 싶으셨던 걸까

 

얼마나 깎고 깎으면

아픔 많은 인생의 가시들을 벗겨 낼 수 있을까

얼마나 벗겨 내면

비늘처럼 덮여있는 위선을 버릴 수 있을까

 

얼마나 버리고 버리면

알밤처럼 순연의 모습 드러낼 수 있을까

 

오늘따라 깊어지는 아버지의 그리움에

밤을 깎으며

독선과 모순 편견이 많은

 

내 인생을 다듬고 있다

 

 

 

 

 

 

김호순 시 l 그리움은 멈춤이 없습니다

l 아버지

밤을 깎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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