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의 지위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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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수도에 관한 역사적 변화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복잡한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 중요성을 반영합니다.
도시의 위상은 수세기에 걸쳐 여러 번 바뀌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도시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은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수도의 변천사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1. 고대 예루살렘
◯ 가나안 시대와 여부스 시대 : 고대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기 전에 ‘예루살렘’은 ‘가나안’ 도시였으며 나중에 ‘여부스’ 사람들이 점령했습니다.
◯ 다윗 왕의 정복(기원전 1000년) : ‘다윗’ 왕은 기원전 1000년경에 이 도시를 정복하고 이곳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아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확립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첫 번째 성전을 건축하여 예루살렘의 영적 중요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이 솔로몬‘ 성전을 ’제1성전‘이라고 부릅니다.
◯ 바빌로니아 유배(기원전 586년) : ‘바빌로니아’ 인들이 도시와 ’제1성전‘을 파괴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되면서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지위가 붕괴되었습니다.
2. 포로 이후 시대와 두 번째 성전 시대
◯ 포로에서 귀환(기원전 538년) : ‘페르시아’인들이 ‘바빌론’을 정복한 후 ‘페르시아’ ‘고레스’왕의 칙령에 의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으며 이는 두 번째 성전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제2성전’이라고 부르는 두 번째 성전은 당시 성전 건축을 리더했던 ‘스룹바벨’의 이름을 따서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불렀는데, ‘헤롯’ 왕국 시기 ‘헤롯 1세’가 대규모로 재건축하여, 기존의 건물은 대규모 신축 건물과 새 외관에 덮이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있는 모형들은 대부분 이 증축 후의 성전을 묘사하고 있으며, 제2성전은 585년간 존속합니다.
◯ 로마 점령(기원전 63년) : ‘예루살렘’은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기원후 70년에 ‘로마인’들은 ‘유대인’의 반란 이후 예루살렘 공방전의 보복으로 이 제2성전을 파괴했지만, ‘예루살렘’은 기원후 135년 ‘바르 코크바(Bar Kokhba)’ 반란이 일어날 때까지 유대인 생활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AD 135년) : ‘바르 코크바(Bar Kokhba)’ 반란을 진압한 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는 도시의 이름을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꾸고 ‘유대인’의 입국을 금지하여 ‘유대인’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지위를 종료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 유대인 디아스포라 시대 : '유대인' 디아스포라 시대는 '바빌로니아'인에 의해 기원전 586년에 제1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현대의 이라크)'으로 추방되는 '바빌로니아' 유배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페르시아'가 기원전 538년에 '바빌론'을 정복한 후 일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유대인' 공동체는 전 세계적으로 계속 흩어졌습니다. 특히 나중의 역사적 사건 이후에도 그러했습니다.
'유대' 반란 이후 AD 70년에 '로마'인에 의해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된 이후 더 중요하고 광범위한 디아스포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과 그 너머로 대량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르 코크바' 반란(서기 132~135년)은 '로마인'들이 많은 '유대인'을 추방하거나 살해하고 '예루살렘'의 이름을 '아엘리아 카피톨리나'로 바꾸고 '유대인'들이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면서 '유대인'의 분산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성장하여 유대인 공동체가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을 거쳐 결국 전 세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3. 중세~오스만 시대
◯ ‘비잔틴’ 및 ‘이슬람 칼리프’ 통치 : ‘예루살렘’은 ‘비잔틴’ 제국 치하에서 기독교 도시가 되었지만, 서기 638년에 ‘라시둔 칼리프’ 통치 하의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수세기 동안 이곳은 다양한 ‘이슬람’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는 중요한 도시였지만 어느 국가의 수도는 아니었습니다.
◯ 오스만 제국(1517~1917) : ‘예루살렘’은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지만 수도가 아닌 지방 도시였습니다. 이 지역의 행정 중심지는 ‘다마스쿠스’나 ‘이스탄불’과 같은 다른 도시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4.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1917~1948)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연맹은 ‘영국’에게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넘겨주었고, ‘예루살렘’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령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 예루살렘의 중요성 : 이 기간 동안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 ‘예루살렘’을 각자의 국가적 열망의 중심지로 여겼고, 도시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5. 현대 이스라엘 국가(1948년 이후)
◯ 독립 선언(1948) :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 독립을 선언했을 때 터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인해 ‘텔아비브’는 처음에는 임시 수도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부분적으로 나누어져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 예루살렘을 수도로(1949) : 1949년 12월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언하고 정부와 ‘크네세트(의회)’를 ‘텔아비브’에서 ‘서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 6일 전쟁(1967) :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요르단’에서 ‘동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1980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완전하고 통합된" 수도로 선언하는 "예루살렘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6. 예루살렘 지위를 둘러싼 국제 분쟁
◯ 논란의 여지가 있는 수도 : ‘이스라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가는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도시가 갖는 중요성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부분의 국가는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유지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 : 2017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후 2018년 5월에 ‘미국’ 대사관을 그곳으로 이전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칭찬과 논란을 모두 불러일으켰고, 도시의 논쟁적인 지위를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 현재의 ‘예루살렘’ : ‘예루살렘’은 ‘크네세트’, ‘총리실’, ‘대통령 관저’ 등 정부 기관이 위치한 ‘이스라엘’의 사실상의 수도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지위는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이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동예루살렘’과 관련하여 여전히 국제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은 주로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차이뿐 아니라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과 1967년 6일 전쟁 전후의 지위로 구별됩니다.
☞ 역사적 배경
◯ 서예루살렘 : 이 지역은 20세기 초부터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했습니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동안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았고, 1948년부터 1967년까지 ‘이스라엘’의 행정 및 정부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 동예루살렘 : 역사적으로 ‘동예루살렘’에는 ‘서쪽 벽(유대교)’, ‘알루미나 성벽’ 등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유적지가 포함된 구 도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아크사 모스크 및 바위 돔(이슬람)’, ‘성묘 교회(기독교)’.
1948년부터 1967년까지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의 지배를 받았고, 인구의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인이었습니다.
☞ 1967년 6일 전쟁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에서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나중에 합병하여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통합 수도로 선언했습니다.
이 합병은 결코 국제적으로 인정된 적이 없으며, ‘동예루살렘’의 지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인구 통계학적, 문화적 차이
◯ ‘서예루살렘’ : 대부분 ‘유대인’이며 세속적, 종교적, 초정통 유대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부 건물, 대학, 문화 기관 및 현대적인 인프라를 갖춘 현대적인 도시입니다.
◯ 동예루살렘 : 주로 ‘아랍계 팔레스타인’ 인으로’인으로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동예루살렘’은 서부에 비해 개발이 덜 되어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곳에는 올드 시티의 고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주요 종교 유적지가 있습니다.
☞ 정치적, 법적 지위
◯ 서예루살렘 : ‘이스라엘’은 분할되지 않은 수도의 일부로 인정하지만, 많은 국가는 2017년 이후까지 그곳에 대사관을 두지 않았습니다.
◯ ‘동예루살렘’ :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수도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국제 사회는 이를 점령지로 간주합니다. ‘팔레스타인’ 인들은팔레스타인’인들은 ‘동예루살렘’을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여깁니다. ‘유엔’ 결의안은 이 도시가 국제적 지위를 가질 것을 요구했지만, 이는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 지방 통합 및 분리
1967년 ‘동예루살렘’ 합병 이후 ‘이스라엘’은 법과 지방자치 서비스를 ‘동예루살렘’으로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 사이에는 기반 시설, 서비스, 생활 조건 측면에서 명확한 구분이 남아 있습니다. ‘동예루살렘’ 주민들은 대부분 ‘팔레스타인’인으로, 이들 중 다수는 ‘이스라엘’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완전한 시민권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예루살렘’과는 다른 법적,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 보안과 장벽
특히 2차 인티파다(2000년대 초반) 동안 안보 문제에 대응하여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일부와 ‘서안지구’의 다른 지역을 분리하는 보안 장벽(일부는 벽, 일부는 울타리)을 건설했습니다. 이러한 장벽으로 인해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의 물리적 구분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 요약
‘서예루살렘’은 대부분 ‘유대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1948년부터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이스라엘’ 정부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예루살렘’은 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며 구시가지와 주요 종교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1967년에 ‘이스라엘’에 합병되었지만 여전히 국제 사회에서는 ‘점령지’로 간주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 인들은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진행 중인 논쟁과 협상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은 하나의 도시로 부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동(東)·서(西)로 분열된 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수도는 '서예루살렘'이고,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취급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동·서 예루살렘을 분리해 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나가기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고대의 복잡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의미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일반적인 해석은 ‘예루살렘(히브리어로 יְרוּשָׁלַיִם, Yerushalaim)’이라는 이름이 두 부분에서 유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ירו)’ : 이 부분은 ‘기초’ 또는 ‘도시’로 해석됩니다.
‘Shalem(שלם)’ : ‘평화’, ‘전체’ 또는 ‘완전함’을 의미하는 ‘Shalom’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의 가능한 의미 중 하나는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역사는 수천 년에 걸쳐 종교적, 정치적, 영토적 갈등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그 이름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깊은 영적,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이스라엘의 적대국이나 단체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스라엘이 너무 심하다.”라고 ‘이스라엘을’ 욕하기도 합니다.
저는 좀 더 차분하게 이스라엘을 둘러싼 팩트들을 들여다보고, 사건 속에 있는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을 바로 알면 시대가 보입니다. (2024.09.23. 부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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