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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제3편] 10년의 표류, 바다 위에서 만난 괴물과 유혹

2026. 9. 2. 17:21ㆍ세상을 보는 눈/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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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제3편] 10년의 표류, 바다 위에서 만난 괴물과 유혹

 

《오디세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트로이를 떠난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섬과 바다를 지나며 겪는 10년간의 모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오디세이》가 처음부터 시간 순서대로 “트로이를 떠났다 → 괴물을 만났다 → 또 다른 위험을 만났다”라고 차례대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사시는 이미 숱한 시련을 겪은 중반부에서 시작되며, 오디세우스가 과거의 모험을 회상하며 직접 들려주는 역순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1. 로토스 열매 - 잊어버리는 행복

처음 만나는 위험 가운데 하나가 '로토스(연꽃) 먹는 사람들(Lotus-Eaters)'의 섬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로토스 열매를 먹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립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괴물이 죽이는 것도 아닙니다.

칼을 들이대지도 않습니다.

그저

“여기가 좋은데, 굳이 고단하게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라며 본향을 잊게 만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귀환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유혹일지 모릅니다.

2. 키클롭스 폴리페모스 - 지혜와 교만

그리고 마침내 유명한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Polyphemus)가 등장합니다.

폴리페모스는 거대한 '키클롭스(Cyclops = 외눈박이 거인)'였습니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그의 동굴에 갇히고 맙니다.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이때 오디세우스는 힘이 아니라 지혜를 선택합니다.

폴리페모스가 이름을 묻자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대답합니다.

 

📌 “Outis(우티스)” - “아무도 아니다(Nobody).”

독주를 먹여 거인을 취하게 만든 뒤 눈을 멀게 한 오디세우스는, "아무도(Outis) 나를 공격한다!"고 울부짖는 거인 덕분에 다른 키클롭스들의 개입을 막고 탈출에 성공합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지혜와 기지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동굴을 빠져나와 배를 타고 멀어지던 순간, 오디세우스는 승리감에 취해 끝내 자기 정체를 외치고 맙니다.

 

“나는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다!”

 

왜 그랬을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이름을 “Nobody”라고 숨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떻게 폴리페모스를 속였는지,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자신이 만든 위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사람이 오디세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를 저주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이 저주는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묘한 역설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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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는 지혜로 위기를 만들고,
지혜로 그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욕 때문에 다시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위기를 잘 이겨냈는데,

왜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가?

왜 나는 ‘Nobody’로 살아남았으면서
다시 ‘내가 누구인지’를 외치고 싶어 하는가?

어쩌면 이것이 폴리페모스 이야기의 또 하나의 핵심인지도 모릅니다.

 

지혜가 위기를 이기게 할 수는 있지만,
교만은 그 지혜가 만들어낸 승리마저 다시 위기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앞서 우리가 살펴본 “Nobody”라는 말이 다시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는 “Nobody”가 되었을 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디세우스다!”라고 외치는 순간,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되찾는 대신 새로운 위험을 불러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 “What if it’s not Nobody, but Nobody?” _ 그는 정말 ‘아무도 아닌 사람’이었을까?
🔎 아니면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훗날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 ‘Nobody’가 된 오디세우스가 어떻게 다시 ‘Odysseus’가 되는가.

이것이 바로 오디세이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3. 아이올로스의 바람 - 거의 도착했는데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에게 순풍을 제외한 모든 악풍을 가죽 자루에 담아 줍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배는
집으로 향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타카가 눈앞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오디세우스가 잠든 사이,

자루 속에 보물이 들었을 것이라 의심한 선원들이

자루를 열어버립니다.

갇혀 있던 온갖 풍랑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배는 다시 멀리 튕겨 나갑니다.

집이 거의 보였는데
다시 멀어졌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모든 것이 다시 흐트러집니다.

4. 키르케 - 편안함이 목적지를 가리울 때

마법사 키르케의 섬에 도착한 부하들은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하고 맙니다.

 

오디세우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마법을 물리치고 부하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습니다.

 

이후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은 키르케의 대저택에서

안락한 대접을 받으며 무려 1년 동안 머물게 됩니다.

 

위험에서 벗어난 뒤 찾아온 편안함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을 잊게 만드는 또 다른 머묾이었습니다.

5. 하데스, 죽음의 세계를 지나며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오디세우스는 살아있는 몸으로 음산한 저승(하데스)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 귀향을 위한 조건들을 전해 듣고,

트로이에서 죽은 전우들과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혼을 만납니다.

 

이곳에서 귀향의 의미는 깊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지 장소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과 내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기억하고 마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6. 세이렌 - 유혹을 이기는 진짜 지혜

이어 가장 유명한 시험인 세이렌(Sirens)의 바다를 지납니다.

세이렌의 치명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은 항해사들은 홀린 듯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꼭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력을 과신하지 않았습니다.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틀어막고,

자신은 돛대에 굵은 밧줄로 단단히 묶도록 명령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절규하고 밧줄을 풀라 명령했지만,

선원들은 그를 더 세게 묶고 노를 저어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나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고,

“나는 유혹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시스템과 결단으로 스스로를 묶는 것

이것이 바로 세이렌의 바다를 건넌 오디세우스의 지혜였습니다.

7.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 최선이 없는 선택

이제 앞에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기다립니다.

한쪽에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스킬라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거대한 소용돌이 카리브디스가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도 위험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더 적은 희생을 감수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배 전체가 수장되는 카리브디스 대신, 부하 6명의 희생을 감수하고 스킬라 쪽을 택합니다.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은 순간. 그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끝까지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8. 태양신의 소 - 마지막 버팀목마저 사라지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에 도착했을 때,

기아에 허덕이던 부하들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던 신성한 소들을 도살해 먹는 금기를 범합니다.

 

분노한 신의 벼락으로 마지막 남은 배는 파괴되고

동료들은 전원 바다에 수장됩니다.

 

오디세우스 혼자만이 목재에 의지한 채 가까스로 살아남아 '칼립소' 여신의 섬으로 흘러들어갑니다.

9. 칼립소 - 영원한 삶보다 그리운 고향

요정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섬에 7년 동안 붙잡아 둡니다.

그곳은 지옥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심지어 영원한 젊음과 불사의 삶까지 약속된 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매일 바닷가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고향 이타카를 그리워합니다.

 

여기서《오디세이》의 가장 깊은 질문과 마주합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곳과, 내가 정말 돌아가야 할 곳은 과연 같은 곳인가?”

 

모든 편의와 불사의 삶마저 마다하고,

오디세우스는 늙고 병드는 인간의 삶이 기다리는

고향 이타카로의 돌아감을 선택합니다.

 

행복한 곳과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반드시 같은 곳인가?

 

(2026.09.02. 부요함)

 

[전체 목차] 왜 지금, 2,800년 전의 오디세우스인가?

구분 회차 제목 링크
시작 [오디세이 프롤로그] 
오디세우스, 그리고 본향을 찾아가는 인간 👉
본편 [오디세이 제1편] 왜 지금, 2,800년 전의 오디세우스인가? 👉
  [오디세이 제2편] 트로이 전쟁 -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
  [오디세이 제3편] 10년의 표류, 바다 위에서 만난 괴물과 유혹 👉
  [오디세이 제4편] 유혹의 바다에서 길을 잃다 👉
  [오디세이 제5편] 나는 누구인가? 👉
  [오디세이 제6편] 기다리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 👉
  [오디세이 제7편] 드디어 집에 돌아오다 👉
  [오디세이 제8편] 오디세우스와 성경 👉
부록 [오디세이 #부록1]  크리스토퍼 놀런, 그의 영화와 신앙을 구분해서 살펴보기 👉
  [오디세이 #부록2]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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