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2. 15:21ㆍ세계는 지금/오디세이
[오디세이 제1편] 왜 지금, 2,800년 전의 오디세우스인가?

1. 왜 지금, 2,800년 전의 오디세우스인가?
2026년 여름,
대한민국 극장가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2,800년 전의 이야기가
다시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7월 17일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8월 5일 개봉했습니다.
놀런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맷 데이먼이 오디세우스, 앤 해서웨이가 페넬로페, 톰 홀랜드가 텔레마코스 역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2026년 9월 2일.
한국에서 8월 5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28일째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누적 관객 912만 4,237명.
이미 900만 관객을 넘어섰고
천만 관객을 향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2,800년 전의 한 남자의 귀향 이야기가
2026년 대한민국에서 천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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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디세우스와 율리시즈는 다른 사람인가?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제가 던졌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율리시즈와 오디세이는 서로 다른 이야기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오디세우스와 율리시즈는 같은 인물입니다.
오디세우스(Odysseus). 는 그리스어 이름이고,
라틴어 형태가 Ulixes(울릭세스)로 전해졌습니다.
그것이 영어의 Ulysses(율리시즈)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 오디세우스 = 율리시즈
❄️ 오디세이 =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 서사시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3. 호메로스에서 조이스로, 그리고 놀런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전통적으로 호메로스에게 귀속된 고대 그리스 서사시입니다.
다만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전승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으며, 단순히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늘날의 형태로 써 놓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메로스 서사시는 오랜 구전 전통과 시적 전승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전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중심으로 전쟁의 한 국면을 다룹니다.
그리고 《오디세이》는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습니다.
그러니까,
❄️《일리아스》가 전쟁의 세계라면
❄️《오디세이》는 귀향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귀향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계속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났습니다.
제임스 조이스는 1922년 《율리시즈》에서 호메로스의 서사 구조를 현대 더블린의 하루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런은 2026년 다시 그것을 거대한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4. 그런데 왜 하필 오디세우스인가?
아마도 답은 단순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길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왕이었습니다.
전쟁 영웅이었습니다.
지혜와 계략으로 이름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디세이》가 2,800년을 살아남은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길을 잃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갈 곳을 찾습니다.
이제 그가 왜 길을 떠났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026.09.02. 부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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