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2. 17:55ㆍ세계는 지금/오디세이
[오디세이 제6편] 기다리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

― 페넬로페, 이타카 그리고 본향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오디세우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중요한 한 사람을 놓치게 된다.
바로 페넬로페다.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도는 동안 페넬로페는 이타카에 남아 남편을 기다린다.
그녀에게도 1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1. 기다림도 하나의 여행이다
오디세우스는 바다를 여행했다.
하지만 페넬로페도 시간을 여행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폭풍과 괴물이 있었지만,
페넬로페에게는 기다림과 압박이 있었다.
궁전에는 오디세우스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구혼자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페넬로페에게 다시 결혼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페넬로페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전쟁터의 용기와는 다른 종류의 용기다.
기다리는 용기다.
2. 이타카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곳 이타카.
그러나 이타카가 특별한 이유는 섬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가족이 있고, 자신의 이름이 있고, 자신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은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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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경의 본향
여기에서 성경의 ‘본향’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 나그네의 삶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이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과 믿음의 사람들을 설명하면서 ‘본향’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오디세우스의 이타카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묘하게 닮은 질문이 생긴다.
🔎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그리고
🔎 “내가 최종적으로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4. 기다리는 사람
우리는 흔히 여행하는 사람만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오디세우스가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타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페넬로페가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 매우 큰 힘이다.

5. 어쩌면 ‘본향’이란
내가 가장 편안한 곳일 수도 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곳일 수도 있으며,
내가 누구인지 다시 기억하게 하는 곳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타카를 바라보며 우리는 성경의 본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상할 정도로 비슷하다.
“당신은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가?”
(2026.09.02. 부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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