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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② 새 예루살렘은 실제 도시일까요, 상징일까요?

2026. 10. 26. 22:52ㆍBible Quester_바이블 퀘스터/성경, 그 깊은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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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그 깊은 질문들》

_7. 미리 가보는 천국, 성경이 보여 주는 그곳의 모습

 

7-② 새 예루살렘은 실제 도시일까요, 상징일까요?

― 황금 길과 생명수의 강, 생명나무가 보여 주는 영원한 도성

성경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천국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황금으로 된 길, 진주로 만들어진 문,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된 성벽, 그리고 생명수가 흐르는 강과 생명나무가 있는 곳.

 

요한계시록 21~22장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읽다 보면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 “새 예루살렘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시일까요?”

💡 “황금 길과 진주 문은 실제로 존재할까요, 아니면 상징일까요?”

💡 “천사는 어린 양의 신부를 보여 주겠다면서 왜 도시를 보여 주었을까요?”

 

앞선 탐구에서는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하나님의 새 창조와 연결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 새 창조 가운데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연구 방향을 밝혀 두겠습니다.

성경원은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실재적인 영원한 도성으로 이해합니다. 다만 그 도성을 묘사하는 말씀에는 깊은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 판단이 어떤 성경적 근거 위에 서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1. 새 예루살렘은 어디에서 오는 도성일까요?

📜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요한은 새 예루살렘이 땅에서 건설되는 모습을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새 예루살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0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3:14에서도 성도들이 장차 올 영원한 도성을 찾는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은 어디로 내려오는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21장의 순서를 살펴보면 실마리가 보입니다.

 

먼저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봅니다(21:1).

이어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봅니다(21:2).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선언이 이어집니다(21:3).

 

이 흐름을 보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질서 가운데 나타나는 도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그 새 땅이 현재의 지구가 변화되고 회복된 것인지, 하나님께서 현재의 세계와 구별되는 새로운 창조 세계를 이루시는 것인지는 해석이 나뉩니다. [주1]

 

성경은 새 예루살렘이 어느 행성에 세워지는지, 우주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별도의 행성을 준비하셨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사람이 만들어 낸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영원한 도성이며, 새 창조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삶을 보여 줍니다.

2. 천사는 왜 신부를 보여 주겠다며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을까요?

📜 요한계시록 21:9~10

천사 가운데 하나가 요한에게 어린 양의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에서 천사가 보여 준 것은 한 여인의 형상이 아니라 거룩한 도성이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어린 양의 신부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런데 왜 천사는 그 신부를 보여 주겠다며 도시를 보여 주었을까요?

 

먼저 요한계시록 19:7~8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신부의 준비가 등장합니다.

신부가 입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과 연결됩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11:2에서는 바울이 성도들을 그리스도께 드릴 정결한 처녀에 비유합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어린 양의 신부는 그리스도께 속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왜 그 신부를 도성의 모습으로 보여 주었을까요?

여기에는 요한계시록 특유의 상징적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큰 음녀가 바벨론이라는 큰 성과 연결됩니다.

반대로 21장에서는 어린 양의 신부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과 연결됩니다. [주2]

 

이는 단순히 신부가 살 집을 소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삶을 도성의 모습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그 도성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 요한계시록 21:27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여기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을 이해할 때 아름다운 건축물에만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 도성의 중심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 그리고 그분께 속한 구원받은 백성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그들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삶을 보여 주는 도성인 것입니다.

3.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21:12~14에는 새 예루살렘의 구조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도성에는 열두 문이 있고, 문마다 천사가 있으며, 문 위에는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의 이름이 함께 등장할까요?

열두 지파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떠올리게 하고, 열두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진 신약 교회의 기초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오신 구원의 역사가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에는 더욱 특별한 구조가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같은 절에서는 그 성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다고 말씀합니다.

즉, 새 예루살렘은 정육면체의 형태로 묘사됩니다.

 

이 모습은 구약성경의 성전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6:20에 따르면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이십 규빗이었습니다.

 

지성소 역시 정육면체 구조였습니다.

구약의 지성소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특별히 나타내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에서는 도성 전체가 지성소를 떠올리게 하는 정육면체로 묘사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성전의 한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도성 전체에 충만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3]

 

물론 정육면체라는 도형 자체가 언제나 거룩함을 뜻한다고 성경이 직접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과 지성소의 구조가 서로 대응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합니다.

4. 황금 길과 보석 성벽은 실제 모습일까요?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모습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도성은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묘사됩니다.

기초석은 여러 종류의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열두 문은 각각 하나의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도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황금빛 도시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금은 투명한 유리와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도성을 맑은 유리 같은 순금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요한이 본 광경을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재료로 설명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황금과 보석은 영광과 아름다움, 귀함과 순결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4]

 

그렇다고 새 예루살렘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 도성을 보여 주는 환상에 상징적인 묘사가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황금과 보석의 묘사를 현재의 건축 자재와 똑같은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도성의 실재까지 부정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이 전하려는 중심은 건축 재료의 목록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영원한 나라는 인간이 만들어 낸 어떤 도시보다도 영광스럽고 아름답다는 사실입니다.

5. 새 예루살렘에는 왜 성전이 없을까요?

이제 매우 특별한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 요한계시록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중심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임재를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에는 별도의 성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께서 친히 그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23은 그 성에 해나 달의 비침이 필요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해와 달이 우주에서 반드시 사라진다는 설명이라기보다, 그 도성에 하나님의 영광 외에 다른 빛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의 강조점에 주목하게 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가장 큰 영광은 황금 길도, 보석 성벽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직접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6.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는 무엇을 보여 줄까요?

요한계시록 22장에 들어서면 새 예루살렘의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집니다.

 

📜 요한계시록 22:1~2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그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으며,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달마다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장면은 어디선가 본 듯하지 않습니까?

바로 창세기의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 2장에는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과 생명나무가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뒤에는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막혔습니다(창세기 3:22~24).

 

그런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합니다.

또한 에스겔 47장에도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강가의 나무들, 그리고 치유를 위한 잎사귀가 묘사됩니다.

이 말씀들을 연결하면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이 아름답게 이어집니다.

 

창세기에서 죄로 인해 잃어버린 생명의 복이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새 창조 가운데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질병도 없을 텐데 왜 만국을 치료하는 잎사귀가 필요할까요?

 

요한계시록 21:4에서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22:2의 치료를 영원한 나라에서도 질병이 계속 발생한다는 증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만국이 하나님의 생명과 치유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모습을 보여 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5]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는 영원한 생명의 풍성함을 보여 줍니다.

7. 새 예루살렘의 문은 왜 언제나 열려 있을까요?

📜 요한계시록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고대의 도시들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문을 닫았습니다.

특히 밤이 되면 성문을 닫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은 성문을 닫지 않습니다.

 

이는 더 이상 두려움과 위협 때문에 문을 닫을 필요가 없는 완전한 평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말씀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27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거짓을 행하는 자는 결코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갑니다.

따라서 성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 누구나 죄 가운데 그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문은 두려움 때문에 닫히지 않지만, 그 도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린 양께 속한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열린 문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보여 줍니다.

8.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은 실제 도시일까요, 상징일까요?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 황금 길과 보석 성벽, 성전이 없는 도성,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은 실제로 존재할 도시일까요?

 

성경원은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실재적인 영원한 도성으로 이해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몸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고, 그 새 창조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삶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실제 도성이 반드시 오늘날의 도시와 동일한 건축 구조를 지닌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을 어린 양의 신부와 연결하고,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 정육면체의 구조, 맑은 유리 같은 황금 등 상징적인 의미가 풍부한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과 그 묘사에 상징이 담겨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주6]

 

우리는 새 예루살렘이 실제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이라고 판단합니다.

다만 그 도성의 정확한 물질적 구조와 형태까지 요한이 본 환상의 표현 그대로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9. 성경원의 연구 결론 — 핵심 답변

🔎 “새 예루살렘은 실제 도시일까요, 상징일까요?”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창조 가운데 실제로 존재할 영원한 도성이라고 판단합니다.

다만 요한계시록이 묘사한 황금 길과 보석 성벽, 열두 문과 생명수의 강, 생명나무 등의 모습에는 깊은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단순한 상상의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삶의 실재를 보여 주는 도성이며, 그 모습은 상징과 환상의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었다고 이해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질서 가운데라고 판단합니다.

 

다만 그 새 땅이 현재 지구가 변화된 것인지, 현재 세계와 구별되는 새로운 창조 세계인지는 성경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시며, 그곳에는 다시 저주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요한계시록 22:3~4).

 

결국 새 예루살렘의 가장 큰 영광은 황금이나 보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께서 그곳에 계시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 주석 및 성경 연구 자료

[주1]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 세계의 회복인가, 새로운 창조인가?

요한계시록 21:1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고 말씀합니다.

반면 로마서 8:19~23은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 두 본문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현재 창조 세계의 변화와 회복을 강조하는 해석과, 이전 세계와 구별되는 새 창조를 강조하는 해석이 나뉩니다.

 

본문은 새 예루살렘이 특정 행성에 위치한다고 밝히지 않습니다.

 

[주2] 어린 양의 신부와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9~10에서 천사는 신부를 보여 주겠다고 한 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 17:1~5, 18에서도 여자와 도시가 연결됩니다.

요한계시록 19:7~8과 고린도후서 11:2는 신부의 이미지를 하나님의 백성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본문입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의 도성 이미지와 구원받은 백성의 이미지를 서로 분리해서만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주3] 정육면체와 지성소

요한계시록 21:16은 새 예루살렘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다고 말씀합니다.

열왕기상 6:20의 솔로몬 성전 지성소도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이십 규빗이었습니다.

두 구조의 대응은 새 예루살렘 전체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충만하다는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다만 성경이 정육면체라는 도형 자체의 의미를 별도로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주4] 황금과 보석의 상징성

요한계시록 21:18~21은 새 예루살렘을 금과 보석, 진주 등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맑은 유리 같은 순금’이라는 표현은 그 장면이 일반적인 건축 재료의 설명만은 아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황금과 보석은 도성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각 재료가 실제로 어떤 물질적 형태를 지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주5] 만국을 치료하는 생명나무 잎사귀

요한계시록 22:2의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 21:4의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에스겔 47:12의 강가 나무와 치료하는 잎사귀도 중요한 배경입니다.

 

이 표현을 영원한 나라에 질병이 계속 존재한다는 뜻으로 단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생명과 회복의 은혜를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6] 새 예루살렘의 실재와 상징

요한계시록은 환상과 상징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묵시문학적 특징을 지닙니다.

그러나 상징적인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 표현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약속까지 허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원은 새 예루살렘을 실재적인 영원한 도성으로 이해하되, 요한이 본 환상의 세부 묘사가 오늘날의 건축 구조와 물질적 재료를 그대로 뜻한다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경 본문들을 종합하여 내린 연구 판단입니다.

📚 주요 성경 연구 본문

  • 창세기 2:8~14, 3:22~24
  • 열왕기상 6:20
  • 이사야 56:6~8
  • 에스겔 47:1~12
  • 로마서 8:19~23
  • 고린도후서 11:2
  • 히브리서 11:10, 12:22, 13:14
  • 요한계시록 17:1~18, 19:7~8, 21:1~27, 22:1~5

《성경, 그 깊은 질문들》

_7. 미리 가보는 천국, 성경이 보여 주는 그곳의 모습

 

7-③ 천국에서 우리는 어떤 몸으로, 누구와 살아갈까요?

― 부활의 몸과 기억,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영원한 도성이라면, 이제 그곳에서 살아갈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 “천국에서도 지금의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 “부활한 몸은 지금의 몸과 어떻게 다를까요?”

🔎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알아볼 수 있을까요?”

 

다음 탐구에서는 예수님의 부활과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부활한 성도의 몸과 기억,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서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그 깊은 질문들》 전체 목차

 

(2026.10.26. 성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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