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4)
7. 우호익(禹浩翊) 선생의 생애
우호익은 숭실학당이 창건되던 해인 1897년 1월 8일, 평안남도 강서군 동진면 태성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동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으며,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젊은 아버지 슬하에서 외롭게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계모가 들아와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염려하여 24세의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고 일생동안 혼자 살면서 외아들만을 보살폈다고 합니다.
홀아비인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있던 우호익은 16세되던 1912년 4월 1일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우호익은 고학으로 중학교 5년을 마치고 1917년 4월 1일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는 선생들의 신임 속에서 대학에서도 계속 근로 장학생으로 공부했습니다.
우호익은 평양에 소재한 숭실전문학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학생전도단의 일원이 되어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진흥(振興)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열심히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지만 돌아온 것은 허탈뿐이었고,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우호익 선생은 직접 단장이 되어 16명의 숭실전문학교 학생을 전도운동에 참여시켰습니다. 그는 전도대원을 이끌고 남한 전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우선 가까운 지역인 평안도를 중심으로 실시해 목포까지 이르렀습니다.
목포경찰서에서는 평양에 있는 숭실전문학교 학생전도단이 목포까지 내려와서 강연을 한다는 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미 목포 영흥학교 출신 중에는 3·1 운동에 가담했던 학생들이 많이 있었기에 목포경찰서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를 잃어버린 삶이 얼마나 허탈합니까? 우리가 사모하는 나라는 이 땅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장차 우리가 가야할 저 천국입니다. 바로 예수 믿는 일이 애국하는 길이고 이 길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일본 고등계 형사는 강연을 하고 내려오는 우호익 학생을 체포해 갔습니다. 함께했던 박형룡, 송강선 등과 함께 즉결 재판을 받았고. 우호익은 주동적인 역할을 했다 하여 10개월간의 형을 받고 목포형무소에 구금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김아각 선교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3개월 만에 석방이 되어 그 길로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김아각 선교사는 그에게 일본으로 유학갈 것을 권했습니다.
마침 우호익은 일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던 차였기에. 여러 통로를 통해 일본에 있는 많은 대학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양심적인 인재를 많이 양성하고 있다는 동경에 있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유학을 하고, 192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927년 숭실전문학교의 교수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1938년 신사참배문제로 학교가 자진 폐교되자 우호익은 잠시 언론기관에서 일을 하였고. 다시 평양도서관 관장으로 잠시 일을 하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평양 숭실대학 재건위원회를 조직하고 활동하다가 공산당의 방해 공작으로 그만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1948년 가족을 이끌고 월남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잠시 서울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숭실대학 재건운동을 하다가 이번에는 6·25전쟁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53년 10월 10일 숭실학교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여 재건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드디어 1954년 4월 15일 인가를 받아 서울 영락교회 교육관에서 개교를 하고 학장은 한경직 목사가 부학장은 우호익 장로가 맡았습니다. 실질적인 학교운영은 부학장인 우호익 장로가 맡아 수고를 하였으며, 1958년에는 명예학장, 1977년에는 숭실대학의 재건의 공으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8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8. 각 나라의 나라꽃(國花)
과테말라 - 리카스테난스 |
그리스 - 향제비꽃 |
남아프리카 공화국 - 프로테아 |
네덜란드 - 튤립 |
네팔 - 만병초 |
뉴질랜드 - 회화나무 |
대한민국 - 무궁화 |
도미니카 공화국 - 마호가니 |
독일 - 수레국화 |
덴마크 - 토끼풀 |
라오스 - 플루메리아 |
러시아 - 캐모마일 |
레바논 - 레바논시다(백향목) |
루마니아 - 백장미 |
마다가스카르 - 부채잎 파초 |
말레이시아 - 부상화 |
멕시코 - 다알리아 |
모나코 - 카네이션 |
미국 - 장미 |
미얀마 - 사라수 |
바티칸 - 나팔나리 |
베네수엘라 - 타베비아 |
베트남 - 연꽃 |
벨기에 - 아잘레아 |
볼리비아 - 꽃고비 |
불가리아 - 장미 |
브라질 - 카틀레야 |
사우디아라비아 - 대추야자 |
스리랑카 - 연꽃 |
스위스 - 에델바이스 |
스페인 - 오렌지꽃 |
시리아 - 아네모네 |
싱가포르 - 난 |
아르메니아 - 아네모네 |
아르헨티나 - 피토라카 |
아일랜드 - 흰 클로버 |
아프가니스탄 - 튤립 |
영국 - 장미 |
예멘 - 커피나무 |
오스트레일리아 - 아카시아 |
오스트리아 - 에델바이스 |
우루과이 - 에리스리나 |
에스토니아- 수레국화 |
에티오피아 - 칼라디움 |
이란 - 튤립 |
이스라엘 - 올리브 |
이집트 - 수련 |
이탈리아 - 데이지 |
인도 - 양귀비 |
인도네시아 - 보르네오 재스민, 난초, 라플레시아 |
일본 - 일본은 공식적인 나라꽃이 없으며 국화가 황실을 상징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 함박꽃나무 |
중화민국 - 매화 |
체코 - 타리아 |
칠레 - 동백꽃 |
카메룬 - 수련 |
캄보디아 - 수련 |
캐나다 - 사탕단풍 |
콜롬비아 - 카틀레야 |
쿠바 - 진저 |
태국 - 라차프륵 |
튀르키예 - 튤립 |
튀니지 - 재스민 |
파나마 - 파나마초 |
파키스탄 - 수선화 |
페루 - 깐뚜따(cantuta) |
포르투갈 - 라벤듈라 |
폴란드 - 팬지 |
프랑스 - 아이리스 |
핀란드 - 은방울꽃 |
필리핀 - 재스민 |
중화인민공화국 -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
해방 후 1950년대부터 서울대학 농과대학 화훼연구실에서 학문적인 연구와 육종, 세계적인 원예품종의 도입과 일반재배법의 개발 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와 농진청 원예연구소에서 무궁화 육종에 착수하였고, 1972년 역사상 처음으로 약 100품종의 무궁화를 전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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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듣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숨박꼭질 하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했던 시절의 그 소리가 그리워 집니다.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대한민국”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우리나라에 대한 글들을 모으고 쓰려고 하면서, 먼저 무궁화가 떠올랐습니다.
‘우호익(禹浩翊)’ 선생의 고증에 근거한 논리 정연한 무궁화에 대한 논증과 기고문을 보면서, "선생이 오늘날 계셨으면 ‘한강’ 작가 앞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겠구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 제가 가진 무궁화 사진들과 글들을 다시 정리하여, 우리나라꽃 무궁화를 함께 공유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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