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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부요함/세계는 지금

이란의 고대사, 엘람 왕조에서 사산 왕조까지

by buyoham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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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고대사, 엘람 왕조에서 사산 왕조까지

이란의 나크셰 루스탐_Naqsh-e Rustam : 고대 제왕들의 무덤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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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중심에 위치한 이란은 세계 문명의 발전과 깊이 얽혀 있는 고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왕조에 걸쳐 이란의 과거는 독특한 문화와 풍부한 역사적 공헌이라는 지속적인 유산을 남겼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고대 이란을 형성한 주요 왕조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주요 업적과 역사적 중요성을 탐구할 것입니다.

 

1. 엘람 왕조 (기원전 2700년경 – 기원전 539년)

엘람 왕조는 이란 고원의 초기 왕국 중 하나였으며 이 지역의 고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도인 수사(Susa)를 중심으로 엘람인들은 수메르, 아카드 등 이웃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장기간 교류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이란의 고대 문화유산의 토대를 마련한 독창적인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변의 강력한 문명들과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을 겪으며 발전했지만, 결국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2. 아케메네스 왕조 (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아케메네스 왕조는 성서에서 고레스라고도 알려진 키루스 2(키루스 대왕)가 세운 이란 최초의 대제국이었습니다. 이 제국은 세 대륙에 걸쳐 펼쳐져 있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과 동의어이며, 이는 미래 페르시아 제국의 토대를 마련하고 세계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키루스 대왕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에 대한 관용 정책, 특히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정책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후계자인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는 제국을 더욱 확장했으며 유명한 페르시아 전쟁을 포함하여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왕조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몰락했지만, 왕조의 통치, 행정 구조 및 영향력은 후기 이란 제국까지 지속되었습니다.

 

3. 파르티아 왕조 (기원전 247년 – 서기 224년)

파르티아 왕조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몰락 후 이란 고원에서 세워진 왕조로, 로마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파르티아는 실크로드 상에서 중요한 무역로를 통제하며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들의 전술인 파르티아 사격은 기병 전술로 유명하며,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로마에 맞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파르티아 왕조는 여러 부족과 지역 세력들의 연합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런 분권적 성격이 강해 중앙집권이 어려웠고, 결국 사산 왕조에 손에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4. 사산 왕조 (서기 224년 – 서기 651년)

사산 왕조는 이란 고대사의 마지막 왕조로,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중앙 집권화된 통치 체제를 구축하고,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강력한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사산 왕조는 로마 제국과의 지속적인 전쟁을 통해 이란의 국경을 수호했으며, 예술과 학문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특히 건축, 금속 공예, 직물 생산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고, 사산 왕조는 그리스-로마 문화와 인도 문명을 융합한 독특한 문화를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7세기 중반 이슬람의 침입으로 사산 왕조는 멸망하고, 이란은 이슬람 문화권에 편입되었습니다.

 

나가기

이란의 고대사는 엘람 왕조부터 사산 왕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명과 왕조가 교차하는 역동적인 역사였습니다. 이들은 각각의 시대에 걸쳐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고, 주변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란을 중동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 시켰습니다. 이란의 고대사는 현대 이란의 문화와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유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를 많이 궁금하게 하는 이란을 살펴보면서 이란의 고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간략하게 정리하였습니다.

 

(2024. 10. 06. 부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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